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츠쿠시마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이전 == ~~모토나리의 빛나는 낚시 신공~~ 모토나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략을 사용하였다.[* 아마고의 신궁당 숙청도 모토나리의 책략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아마고 하루히사]]가 권력 강화를 위해 독자적으로 한 일이라고 한다.] 첫 번째 모략은 [[차도살인]]이었다. 스에 가에는 [[에라 후사히데]]라는 지장이 있었는데, 그는 모토나리와 함께 전장에 나선 적이 있어 모토나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모토나리는 그를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후사히데는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모토나리는 하루카타에게 후사히데가 모리와 내통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려 이를 의심한 하루카타가 후사히데를 암살하게 만들어 후환을 없앴다. 두 번째 모략은 위장 [[내통]]이었다. 하루카타는 처음엔 육로로 전진하여 모토나리를 공격하려 했다. 육로에서 싸운다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모토나리는 가신 [[카츠라 모토즈미]]를 거짓으로 하루카타와 내통시켜, 해로로 하루카타가 이츠쿠시마로 진격하면 자신이 모토나리의 거성을 빼앗겠다는 거짓 서약서를 보냈다. 이것을 믿고 하루카타는 해로로 공격할 것을 결정하고 이츠쿠시마로 향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토나리는 하루카타를 이츠쿠시마로 유인하기 위해 점령할 생각도 없던 이츠쿠시마에 [[https://ja.m.wikipedia.org/wiki/宮尾城|미야오 성]]을 쌓고 병력을 주둔시키는 스케일 큰 [[기만]] 작전을 준비한다. 모토나리가 성을 쌓은 이츠쿠시마에는 [[이츠쿠시마 신사]]라는 [[신사(신토)|신사]]가 있는데, 이 신사는 당시 일본인들이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였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성지를 무단으로 점거했다는 이유로 하루카타를 포함한 다른 다이묘들이 침공]]해 올 명분도 충분했다.[* 모토나리도 성지를 더럽힌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인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이츠쿠시마 신사 본전을 증축하였다. 이츠쿠시마 신사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으며, 바다 한가운데에 세워진 [[토리이]]가 있는 관광지이자 일본 신토의 성지로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하루카타는 몇 차레 부장을 파견해 미야오 성을 공격했으나 공격은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성을 공격하고자 9월 22일 2만의 대군을 탑승시킨 500척의 선단을 이끌고 이츠쿠시마에 도착했다. 일부 함선들은 스에 군이 상륙한 지점을 지켰다. 9월 24일 스에 군 2만이 이츠쿠시마에 상륙한 것을 안 모토나리는 장남 모리 타카모토, 차남 [[킷카와 모토하루]] 등과 함께 병력 3,500을 이끌고 3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와 합류했다. 이로서 모리의 병력은 4,000이 되었다. 모토나리의 전략은 스에 군을 이츠쿠시마에 끌어들인 뒤 후방에서 기습을 가해 전멸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위해선 스에 군 앞 바다를 지키는 수군 세력을 전멸시킬 필요가 있었다. 모토나리가 끌어모은 수군은 코바야카와 수군을 중심으로 한 300척으로 스에 군의 500척에 비해 열세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모리 군은 [[무라카미 타케요시]]와 구루지마 미치야스[* 무라카미 미치야스(村上通康)라고도 하며 이 사람의 아들이 바로 [[도쿠이 미치유키|구루시마 미치유키]]와 [[구루시마 미치후사]]이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이순신]]에게 죽었다~~] 휘하의 해적 집단인 무라카미 수군중을 회유하기로 했고,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모토나리는 수군중에게 '''단 하루만 배를 빌려달라'''고 전했다고 한다. 어차피 하루만에 다 결판 날 터이니 하룻밤 이상은 필요없다는 것. 9월 28일에 이르러 무라카미 수군 중 300척이 도래하여 수군 세력은 보강되었다. 당시 이츠쿠시마의 미야오 성은 함락 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약간만 늦었더라면 모토나리의 책략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28일 오후 6시 모리 군 4,000명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 오후 10시 이츠쿠시마에 주둔한 스에 군의 후방인 츠츠미케우라에 도착했다. 여기서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 배수의 진을 친 모리 군은 공격을 기다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